부슬비가 내리던 어느날, 오랜만에 서점에서 꽤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친구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그 날도 머릿속은 늘 그렇듯 온통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나? 라는 의구심… 숫자가 추앙받는 시대에 ‘마음을 두드리는 브랜드’라니! 따위의 고민들.
그러던 중
책 <태도가 작품이 될 때>를 마주치고, 제목과 표지를 보고, 표지 사진 작품의 작가에 대해 읽어보고…
곧장 책을 구입해 주말동안 눈깜짝할 사이 읽었습니다.
책의 제목이 ‘태도가 작품이 될 때’라니 태도와 기분을 온통 갈아 넣어 제품을 만든 사람이 꽤나 궁금할만한 제목 아닌가요?
표지의 작품은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라는 작가의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였습니다. 작가는 이 구슬프게 울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내거나 3분짜리 비디오로 만들었다고 해요. 왜 슬픈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또다른 대표작은 <추락>연작이라고 합니다. 어디선가 굴러 떨어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강에 고꾸라지거나 바람에 쓰러지거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등의 상황을 재현합니다. 그리고 유작은 <기적을 찾아서>(1975). 초소형 보트를 타고 혼자 대서양을 횡단하는 퍼포먼스였는데 도중에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열달이 넘어서 텅 빈 배만 어딘가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어떤 이들은 이 실종 또한 작가가 작품의 완성을 위해 연출한 것이 아닌가라고 의심한다고 하는데요. 책에선 이 작가와 작품들에 관해 자유의지, 권위로부터의 탈출 등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전 어쩔 수 없이,
이 작가가 망망대해에서 느꼈을 공포를 상상하고 더 큰 공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자유의지일수도 있지만 어쩔 도리 없이 눈물이 흐르고, 어디선가 굴러 떨어지고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들…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경.
나약한 존재는 결국 쓰러지고 부서진다는 잔인한 원칙을 보여주는 듯한 아더르의 개념미술은 또다른 설치 작품인 <Light Vulnerable Objects…>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재현한 전시를 아래 유튜브링크에서 볼 수 있고 다른 비디오 작품들 역시 유튜브에서 검색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작가의 선택이니 (어쩌면 실종조차도!) 공포와 슬픔의 시선으로만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틀린 것일 수도 있어요. 책에서 해석한 문장을 옮겨보자면...
‘아더르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좌절과 실패가 아니라, 애써 떨어지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태도가 아니었을까.’